2012년 01월 27일
조선상고사(300. 단재 신채호 저, 길원 남태욱 편역)
조선상고사(300)
앞의 전황은 신라가 그 맹약을 배신한 행위를 숨기기 위해 백제의 평양 격파를 본기에서 빼어 버렸고, 거칠부의 10고을 탈취를 누구와 싸운 결과임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百濟先攻破平壤(백제선공파평양---백제가 먼저 평양을 공격해 깨뜨렸다)"고 한 7자가 우연히 남아 있어서 이것이 거칠부전(居柒夫傳)에 게재되어 그 일을 후세에 분명히 밝히게 되었다.
청안(淸安)의 옛이름은 도살(道薩) 혹은 도서(道西)이니, 다 <돌시울>로 읽을 것이요, 진천(鎭川)의 옛 이름은 흑양(黑壤), 금양(金壤), 금현(金峴), 금물내(今勿內) 혹은 만노(萬弩)이니, 우리의 고어(古語)에 천(千)을 <지물>, 만(萬)을 <거물>이라 하였는데, 진천은 <거물내>이므로 흑양의 흑(黑)과 만노의 만(萬)은 다 <거물>의 뜻을 쓴 것이고, 금물(今勿), 금물(金勿)은 <거물>의 음을 쓰는 것이며, 양(壤), 내(內), 노(弩)는 다 <래>의 소리를 쓴 것이고, 금양(金壤), 금현(金峴)의 <금(金)>은 금물(金勿)을 줄인 것이고, <현(峴)>은 금물내(金勿內)의 산성(山聖)을 가리킨 것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지금의 경기도는 물론이요, 충청도의 충주(忠州), 괴산(槐山) 등지까지도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있었으므로 근세에 정다산(丁茶山), 한진서(韓鎭書) 등 여러 선생이 다 "고구려가 지금의 한강 이남의 땅을 한 발자욱도 밟아 본 때가 없다"고 하여 사기의 잘못을 공격하였으나, 이 도살성의 점령으로 보건대 고구려가 한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말이 어찌 잠꼬대가 아니냐?
그러나 이는 고구려의 한때의 점령이고 오랜 동안은 황해도까지도 늘 백제의 땅이었으니, 충청북도 각 지를 고구려의 고을로 만든 삼국사기가 잘못 아님은 아니다.
"竹嶺以外,高峴以內 十郡(죽령이외, 고현이내 10군--죽령 밖 고현 안쪽의 10고을)"은 어디인가? 죽령은 지금의 죽령이요, 고현은 지금의 지평(砥平:양평군) 용문산(龍門山)의 명치(鳴峙)이고, 10고을은 지금의 제천(堤川), 원주(原州), 횡성(橫城), 홍천(洪川), 지평(砥平), 가평(加平), 춘천(春川), 낭천(狼천: 지금의 華川) 등지이니, 뒤에 신라 9주(州)의 하나인 우수주(牛首州)관내의 군현(郡縣)이 그것이다.
# by | 2012/01/27 09:15 | 호랑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