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동백--소설가 이윤기의 감상문

우리의 몸 속엔 신화가 흐른다

인도 문화권에서 쓰이는 인사말 '나마스떼'는
'당신에게 깃들어 있는 신께 문안드립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등짝이 서늘해진다.
인도인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 안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고대 힌두교의 한 발전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역시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섬긴다.
인도 출신 명상가 바그완 라즈니쉬의 책

‘반야심경’의 첫 글월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 안에 깃들어 있는 부처께 문안드립니다.'


▼처음 접해도 익숙한 느낌▼

라즈니쉬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부처가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우리 안에는 부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지음으로써 깨닫는다는 것은
그 부처의 잠을 깨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토박이 종교 천도교는 ‘사람이 곧 한울(人乃天)’이라는 믿음을 섬긴다.
천도교는, 사람이 ‘한울’을 믿어 이 둘이 하나인 경지에 이르는 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사람이 ‘한울’과 하나 되는 것은,
사람 안에 ‘한울’의 씨앗이 없고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일 터이다.

나는 고대 신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 안에 고대 신화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고대의 잔재’, 카를 융의 ‘보편 무의식’,
머치아 엘리아데의 ‘본(本)’은 이 강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신화를 읽을 때, 처음 접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는 느낌,
어디에서 읽어본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도
바로 우리 안에 신화의 씨, 혹은 싹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신화 이야기를 할 때는 라즈니쉬를 흉내내어,
“여러분 안에 깃들어 있는 신화에 문안드립니다”라고 말하고는 한다.
‘신화 읽기’는 우리 안을 흐르던 강 같은 신화를 ‘마중하기’
혹은 ‘다시 흐르게 하기’라고까지 나는 생각한다.

기원전 4세기에 활약했던 그리스의 조각가 중에
뤼시포스라는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 중 진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등신대 대리석상 제작의 전범이 되었던 조각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름답게 깎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뤼시포스가 했다는 말 한마디, 자주 내 귓가를 맴돈다.

“군더더기를 쪼아 내었을 뿐인 걸요.”

대리석 덩어리 안에 대리석상이 들어 있다는 믿음 없이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아름다운 불상을 보고
“어느 기특한 돌쪼시가 돌 속의 부처님을 참 곱게도 모셔내었구나"
하고 감탄했던 걸 보면
우리 시인 미당 서정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노래 중에는 한두 번 듣고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이럴 경우, 나는 그 좋은 노래가 정거장으로 나와
내 안에 깃들어 있던 노래를 마중했다고 여긴다.
‘모란 동백’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TV에서 가수 조영남이 부르는 ‘모란 동백’을 딱 한번 들었을 뿐인데도
그날 하루종일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며칠 뒤 조영남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가 부른다면 나도 따라 부를 수 있노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나는 그 자리에서 절반쯤 성공을 거두었던 것 같다.
조영남은 눈물이 나서 공개석상에서

그 노래 부르기가 망설여진다고 실토했다.

▼신화의 싹 다시 돋게하자▼

나는 내가 그 노래를 한번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었던 까닭,
조영남이 눈물이 나서 공개석상에서

부르기 망설여진다고 한 까닭을 짐작한다.
그 노래가 내 속에서 불리던 노래를 마중한 것이 아니라면,
한번 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이 음악가도 아닌 나에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 노래가 조영남의 삶의 뒤안을 흐르고 있던
정체 모를 슬픔을 마중한 것이 아니라면,
부를 때마다 눈물나게 하는 일이 조영남같이

명랑한 가수에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제하 시인이 만들었다는 그 노래가 우리 안의 노래,
우리 안의 슬픔을 마중한 것이라고 이제 말해도 좋지 않을지.

문안 인사 여쭙기, 불러내기, 다시 흐르게 하기, 마중하기...
내 나날의 화두는 이렇듯 번잡하다.
글 쓰는 것이 직업인 나는 이 번잡한 화두를 ‘받아쓰기’로 요약함으로써
내 기본기를 다지고자 한다.
나는 ‘기본기’라고 했다.

이윤기/소설가

 

by 홍익인간 길원 | 2014/06/04 08:13 | 웃긴 야그 | 트랙백 | 덧글(1)

조선상고사(345. 단재 신채호 저, 길원 남태욱 편역)


조선상고사(345)

 

 당태종이 이것을 보고 몹시 노하여 곧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침노하려고 하니 모시고 있던 신하가 간하였다. 

"대대로의 성명이 이미 연개소문이 아니었은 즉, 이제 사신의 얼굴에 자자(刺字)한 연개소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연개소문의 부하 군사의 죄로, 맹약을 깨뜨리고 군사를 내어 고구려를 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먼저 사신을 보내서 밀서(密書)로 왕에게 왕에게 알아보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당태종이 그의 말을 좇아 사실의 진위(眞僞)를 알려 달라는 밀서를 보냈다. 영류왕이 밀서를 보고 군사를 보내 해라장을 잡아다가 문초하였다. 해라장이 강개히 자백하고 조금도 기탄하지 아니하니, 영류왕이 크게 노하여 서부 살이 연개소문 한 사람만 빼놓고 각부(各部)의 살이와 대대로(大對盧), 울절(鬱折) 등 각 대신을 그날 밤에 비밀히 소집하였는데, "해라장이 당의 임금을 모욕한 것은 오히려 조그만 일이거니와, 그 말단에 대대로도 아닌 연개소문을 대대로라 쓴 것과, 또 허다한 대신들 가운데 다른 대신은 말하지 않고 홀로 연개소문을 들어 그의 휘하 군사로 일컬은 것을 보면, 저들 연개소문을 따르는 자들이 그를 추대하는 것이 명백하며, 또한 연개소문이 항상 당나라 칠 것을 선동해서 조정을 반대하여 인심을 사니, 이제 이를 베지 아니하면 후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벼슬을 박탈하고 사형에 처함이 옳다"고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일치하였다.

그러나 전일(前日) 같으면 한 번 명령하여 군사 한 사람을 보내서 연개소문을 잡아오면 되겠지만, 지금은 연개소문이 서부 살이가 되어 많은 군사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 억센 천성이 체포를 받지 않고 반항 할 것이 열에 아홉은 틀림없으니, 조서로 연개소문을 잡으려면 한바탕 국내가 소란해 질 것이었다.

이제 연개소문이 새로 장성의 축조 역사 감독의 명을 받아 떠날 날이 멀지 아니하였으므로, 오래지 않아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러 올 것이니, 그때에 그의 모반한 죄를 선포하고 잡으면 한 장사의 힘으로도 넉넉히 연개소문을 묶으리라 하여, 각 대신들이 어전에서 물러 나와 비밀히 그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by 홍익인간 길원 | 2014/04/14 10:50 | 호랑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할아버지가 쓰는 손주 일기--95.


할아버지가 쓰는 손주 일기--95.



2014. 3. 3.

이제 남상우는 드디어 학생이 되었다. 해맞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린애 티를 완전히 벗고 어린이가 되었다. 소파 방정환선생님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나라 새나라의 어린이!
1학년 1반 14번. 담임 선생님은 훌륭하신 이양보 선생님.
상우야 학교생활 잘해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씩씩하고 멋진 어린이로 잘 자라주기 바란다.!*


by 홍익인간 길원 | 2014/04/07 11:49 | 손주일기 | 트랙백 | 덧글(0)

할아버지가 쓰는 손주 일기--94.

할아버지가 쓰는 손주 일기--94.

 

 

2014. 2. 19. 오늘 남상우 포항성심유치원 졸업식!


                 이것은 우리 상우가 유치원에서 영어 골든벨 울렸던 날, 원장 수녀님과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by 홍익인간 길원 | 2014/04/07 10:06 | 손주일기 | 트랙백 | 덧글(0)

조선상고사(285. 단재 신채호 저, 길원 남태욱 편역)


조선상고사(285)

 

<풍류(風流)>는 지나 문자의 유희풍류(遊戱風流)의 뜻이 아니라, 우리 말의 <풍류> 곧 음악을 가리킨 것이요, <풍월(風月)>도 지나 문자의 음풍영월(吟風詠月)의 뜻이 아니라 우리 말의 <풍월> 곧 시가(詩歌)를 가리킨 것이니, 대개 화랑의 도가 다른 학문과 기술에도 힘을 쓰나, 음악과 시가에 가장 전념하여 인간세상을 교화하였으니,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보인 진흥왕이 지은 <도령가(徒領歌)>와 설원랑(薛原郞)이 지은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물론 화랑이 지은 것이어니와, 삼국유사에 이른바 " 羅人尙鄕歌者. 尙矣.......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라인 상향가자 상의......고왕왕능감동천지귀신자비일---신라사람들이 향가(鄕歌)를 숭상한 것은 그러므로 왕왕 능히 천지와 귀신은 감동시키는 일)"이라고 한 향가도 또한 거의 화랑의 무리가 지은 것이다.

by 홍익인간 길원 | 2014/03/28 20:05 | 호랑이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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